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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덕천 부천시장 당선자, 고교 졸업 후 9년만에 서울대 정치학과 입학

전북 남원서 태어나 11살 때 부천에 터잡아... 부천남초와 부천중 졸업,늦깍이로 대학 졸업 후 고시 준비해 합격... 변호사 활동하며 정치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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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엔다큐TV(NDN방송)
기사입력 2018-06-17

부천시장으로 당선된 장덕천 당선인은 경기도와 부천시 고문변호사로 시ㆍ도 행정에 필요한 각종 법률자문 및 쟁송사건에 대한 소송 수행을 도맡아 수행해오면서 부천시와 경기도 행정을 뒷받침했다.

장 당선인은 전북 남원에서 태어나 4살 때까지 살았다. 아버지 직업이 군인이어서 강원도 지역에서 초등학교 3학년까지 다녔다.
 
11살 때에 아버지가 17사단에서 준위로 근무하면서 부천에 정착했다. 부천남초등학교에 전학되어 다녔는데 세들어 살던 집 주인이 잠시 집을 비워줘야겠다고 해서 북초등학교 옆으로 잠시 이사를 해 북초등학교를 한 달정도를 다녔다. 다시 살던 집으로 와서 부천남초등학교를 다니며 졸업했다. 이어 부천중학교를 졸업하고 군 자녀들이 다니는 서울 용산 소재 중경고에 입학, 졸업했다.

고교 졸업후 84년도에 한국외대 어문계열에 입학했다. 데모를 몇차례하다 연행되어 군대에 입대하여 병장으로 제대했다.

군 제대 후 부천 심곡본동의 N교회 다니며 청년회장을 하며 동네 친한 친구들과 시민사회 활동을 하기도 했다. 몇년을 방황하다 대학에 들어가기로 결심하고 공부하여 고등학교 졸업 9년만에 서울대 정치학과를 택했다. 93학번이다.
 
 정치학과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장 당선인인 당시 정치학과 학생들이 가장 데모를 많이 했는데 자신도 데모를  하기위해서 였다고 한다. 20대 후반의 나이에 대학에 다시 들어가 민주화운동에 대한 열망을 포기하지 않고 데모도 많이 했다.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대학 졸업 후 잠시 출판사에서 일을 하다가 정치에 관심을 두기도 했지만 386세대들이 정치활동을 하는 것을 보고 이를 접고 사법시험에 도전키로 하고 열심히 공부했다. 1차에 합격하고 2차에 두번을 떨어지기도 했지만 준비 3년만인 2003년 제45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1차에 합격하자 원광대학교에서 전북 출신인 장 당선인에게 학사편입을 해서 학교를 다니도록 했다. 1년에 두번 정도씩 학교에 나와 시험만 보면 졸업을 시켜주었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원광대학교 법대 졸업생이기도 하다.

변호사 합격 후 곧바로 부천 법원 앞에 변호사 사무실을 내고 변호사 활동을 했다. 단순한 변호사 활동만 하지 않고 다양한 활동을 시작했다.
 
부천시 여성청소년 재단 이사 및 부천더불어포럼 상임공동대표, 대한법률구조공단 법률구조위원, 고용노동부 인천지방회 노동위원회 심판위원, 부천지역 노사민정협의회 위원, 부천시 법률고문변호사 등을 역임하며 정치적인 역량을 키워왔고 행정을 세밀하게 익혔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소속으로 각종 시국선언에 참여하는 등 정의와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했다. 지난 2015년 말 역사교과서를 국정화하겠다는 박근혜정부에 맞서 헌법소원을 제기함으로써 변호사로서 헌법가치를 지키는 운동에 직접 나서기도 했다.


이 같은 활동으로 지난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부천원미을 선거구에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예비후보 등록하고 국회의원을 향한 도전을 시작했다. 경선에서 현 설훈 국회의원에게 더불스코어로 패하고 또 다른 도전을 준비했다.
 
와신상담 재기를 꿈꾸던 그에게 정치적 조직과 기반을 다질 수있는 기회가 왔다. 바로 더불어포럼 상임공동대표를 맡으면서부터다. 2016년 박근혜정부 퇴진과 탄핵촉구 촛불집회에 참가하면서 부천지역 혁신세력과 손을 잡으로 이들의 지지를 받았다.

정치인으로서의 꿈을 펼치기위해 총선 경선에서 패한 아픔을 딛고 부천시장 선거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그 꿈을 위해 자신이 졸업한 부천남초와 부천중학교 동문들을 찾아다니며 권리당원을 확보했다.
 
또 각종 단체와 조직에 참여하며 자신을 알리며 후일을 도모했다. 또 호남향우회 회원으로서 향우회 행사에 얼굴을 내보이며 정치적인 입지를 다져나갔다.
 
장 당선인은 다만 향우회에 얽매에는 정치활동을 철저히 배격하고 다양한 계층과 조직을 찾아다니며 장덕천을 알렸다. 또 정치적인 인맥을 형성하는데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국회의원과 지역위원회 관계자, 시의원 등과 소통하며 부천의 새로운 정치인의 이미지를 심어갔다.

김만수 현 시장이 시장선거 불출마를 선언하자 곧바로 시장 선거을 향한 물밑행보를 했다. 예비후보 등록을 하고 경선을 준비했는데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무려 자신을 포함해 9명이나 나섰다. 9대 1의 경쟁률을 뚫어야하는 과제를 안고 있었지만 자신감 하나로 준비를 했다.
 
부천소풍터미널 친구 사무실을 빌려 예비후보 캠프를 차렸다. 수행원과 여직원, 장 당선인의 부인 등 4명이 경선을 준비했다. 다른 후보들처럼 출판기념회나 기자회견을 하지 않았다. 오로지 뚜벅뚜벅 자신의 스타일대로 경선을 준비했다.
 
9명의 예비후보 중 3명이 컷오프되어 6명이 1차경선을 치르게 됐다. 컷오프된 3명의 후보 중 2명이 경쟁후보를 지지하면서 위기에 처했으나 2차 경선에서 탈락한 4명의 지지지를 이끌어내면서 최종 2차 경선에서 승리하며 부천시장 후보가 됐다.

장 당선인의 인생스토리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블로그에 장덕천의 자녀교육이 올라와 있다. 어머니께서 장 당선인 몰래 아들의 구구단을 가르쳤는데 두달 가량 지나 아들이 6단을 외워 천재인줄 알고 조기교육에 돌입, 한글을 가르쳤다고 했다. 그런데 아무리 노력해도 아이가 이해를 못해 한글 가르치는 것을 포기했다. 자녀교육과 관련해서 장 당선인은 아들이 농구클럽 멤버가 5명 밖에 안와서 주전 선수로 뛰게 되었는데 아들이 속한 상도초등학교가 두 게임 모두 패했다며 모두가 주전이 되는 세상을 그려본다고 했다. 자식의 교육을 고민하는 우리나라 보통의 아버지였다.
 
부인 서은주 여사는 장 당선인보다 훨씬 소박한 사람이다. 선거 캠프가 꾸려지자 구석에 마련된 원탁에서 노트북을 꺼내 선거운동을 도와주고 홀연히 캠프 사무실을 떠날 정도다. 이미 당선이나 다름없었던 후보 부인이 선거사무에 대한 어떤 개입도 하지 않고 자신의 일만 했다. 선거운동원들도 누구인지도 모를 정도였다. 꾸미지 않은 전통적인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선거 과정을 지켜본 많은 선거운동원들과 주변사람들은 장 당선인과 부인이 시골스러우면서도 드러내지 않고 뚜벅뚜벅 자기 할 일만 하는 스타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결같은 장 당선인과 부인 서은주 여사의 모습들을 보면서 참 괜찮은 사람들이라는 평가를 했다. 현재 부천법원 인근 꿈동산 아파트에서 아들 현욱 군(상도중)과 살고 있다. 부모는 심곡동 본가에서 살고 있다.
 
학력
-부천남초등학교 졸업
-부천중학교 졸업
-중경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과 정치학과 졸업

 
경력
△(전) 제19대 문재인후보 법률인권 특보
△(전) 부천시 법률고문변호사
△(전) 인천지방노동위원회 심판위원
△(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회원
△(현) 노무현 재단 법률자문변호사
△(현) 부천여성청소년재단 이사
△(현) 부천지역 노사민정협의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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